양자 큐레이션
양자 에르고딕성의 경계에서 관측된 보강 간섭과 양자 정보 확산
Observation of constructive interference at the edge of quantum ergodicity
- 저자 박채연 조교수
- 저널 Nature
- 게재일 22 October 2025
- 카테고리 양자 컴퓨터
- DOI 10.1038/s41586-025-09526-6
KEY SUMMARY
양자 다체계 연구는 기저 상태 탐색을 넘어 양자 시뮬레이터·양자컴퓨터에서 구현 가능한 동역학과 정보 확산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시간-역순 상관자(OTOC)는 일반적인 국소 관측량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정보 확산과 양자 카오스를 관찰하는 핵심 지표이다. 하지만 OTOC는 시간 역전 연산이 필요해 대규모 양자계에서 실험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Google Quantum AI는40큐빗 이상의 랜덤 양자 회로에서 OTOC와 고차 OTOC를 직접 측정하고, 특히 OTOC(2)가 회로의 세부 구조에 매우 민감함을 확인했다. 이 결과는 엄밀한 계산복잡도 기반의 양자 우위 증명이라고 하기보다는, 고전적 방법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양자 다체 동역학을 대규모 양자 프로세서에서 관측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양자 다체 문제
물리학자들에게 물질을 주고 탐구하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온도를 낮춰볼 것이다. 이는 물리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양자역학적 효과의 대부분이 저온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역학적 고체에 대한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한 1910년대부터 현재까지 많은 연구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해밀토니안의 기저 상태(ground state)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하지만 일반적인 양자 다체계(many-body system)에서 해밀토니안의 기저 상태를 구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더욱이 많은 경우 물질을 정확히 기술하는 해밀토니안 자체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해밀토니안으로 물질의 성질을 예측하거나 이를 이용해 고온 초전도와 같은 특정 성질을 갖는 물질을 설계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원자 기반 양자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원하는 해밀토니안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연구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실제 물질을 정확히 기술하는 해밀토니안을 찾아내는 대신, 잘 정의된 양자 다체 해밀토니안을 직접 구현하고 그 성질을 실험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극저온 원자 시뮬레이터에서는 Bose-Hubbard 해밀토니안을 구현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물질에서는 찾기 어려운 해밀토니안이다. 또한 2010년대 이후 양자컴퓨팅 하드웨어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제한적이나마 양자 다체 스핀 해밀토니안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관심은 “물질을 구성하는 해밀토니안”에서 “양자컴퓨터로 구현할 수 있는 해밀토니안”으로 확장되었고, 실제 물질에서 직접 나타나는 해밀토니안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한 연구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양자 다체 동역학
양자 시뮬레이터 또는 양자 컴퓨터에서 제한적으로 해밀토니안의 기저 상태를 얻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모사 가능한 것은 동역학(dynamics)이다. 이에 따라 2010년대 중후반부터 양자 다체 해밀토니안의 동역학 연구가 급격히 진행되었고, 양자 다체 국소화(many-body localization), 양자 다체 상흔(many-body scar), 정보 뒤섞임(information scrambling), 측정 유도 상전이(measurement-induced phase transitions) 등의 현상이 발견되었다.
양자 다체 동역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질문 중 하나는 국소적으로 주어진 정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 전체로 어떻게 퍼져나가는가이다. 예를 들어 물질의 특정 영역에 에너지를 주입해 비평형 상태로 만들면, 시간이 지나면서 계는 평형 상태로 이동한다. 고전적인 응집물질물리 관점에서는 이를 에너지를 운반하는 준입자들이 공간적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물질의 대부분이 이미 평형 상태에 있다면 이러한 준입자들은 주변의 평형 상태에 흡수되고, 에너지 밀도나 다른 국소 관측량의 변화는 처음 에너지를 주입한 영역에서 멀어질수록 점차 작아진다. 또한 주입된 에너지가 물질 전체의 크기에 비해 충분히 작다면 평형 상태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국소 관측량의 변화는 사실상 사라진다.
시간-역순 상관자
그렇다면 일반적인 국소 관측량에서 변화가 사라진 뒤에도, 처음 주어진 정보가 계 전체에 어떻게 퍼져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양자 다체계의 동역학은 유니터리 시간 진화로 기술되므로, 초기의 국소 정보는 사라지는 대신 점차 많은 자유도에 걸쳐 비국소적으로 퍼질 수 있다. 이러한 정보의 확산을 포착하는 대표적인 도구가 시간-역순 상관자(out-of-time correlator; OTOC)이다.
시간-역순 상관자는 1969년 구 소련의 물리학자 Larkin과 Ovchinnikov가 초전도체의 준고전적 기술과 양자역학적 결과의 차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15년 Kitaev가 Sachdev-Ye 모형의 Majorana 페르미온 버전인 Sachdev-Ye-Kitaev(SYK) 모형을 도입하고 OTOC를 해석적으로 계산하여 이 모형이 양자 카오스적 특성을 지닌다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연구를 통해 OTOC가 양자 카오스 자체를 직접 판별하는 지표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시간-순서 상관자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연산자의 공간적 확산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림 1] 참고).
그림 1. 1차원 보즈-허바드 모형에서 시간-역순 상관자의 시간에 따른 변화(위)와 일반적인 시간-순서 상관자(아래). [A. Bohrdt et al. New J. Phys. 19, 063001 (2017)]
시간-역순 상관자의 실험적 측정
시간-역순 상관자는 시간을 뒤로 돌리는 연산 (U+)이 포함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물질은 물론 양자 시뮬레이터에서도 측정이 무척 어렵다. 이번 Google Quantum AI의 연구에서는 Google의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시간-역순 상관자를 직접 측정하였다. 기존의 소규모 실험(예를 들어 [Braumüller et al. Nature Physics 18, 172 (2022)])과 달리, 40개 이상의 큐빗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랜덤 양자 회로에서 시간-역순 상관자를 측정하였으며, 이를 일반화한 고차 시간-역순 상관자도 측정하였다.
측정 결과, 시간-역순 상관자가 알려진 바와 같이 시간-순서 상관자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양자 동역학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또한 2차 시간-역순 상관자는 양자 회로의 세부 사항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확인하였다.
그림 1 a. 실험에서 사용된 고차 시간-역순 상관자를 측정하기 위한 회로. b. 랜덤 회로의 깊이에 따른 2차 시간-역순 상관자의 랜덤 회로 인스턴스에 대한 평균값(위)과 표준편차(아래). c. 회로 깊이에 따라 일반적인 시간-순서 상관자(\(\scriptstyle C^{(1)}\)), 1차 시간-역순 상관자(\(\scriptstyle C^{(2)}\)), 2차 시간-역순 상관자(\(\scriptstyle C^{(4)}\)) 및 그 중 비-대각 요소(\(\scriptstyle C^{(4)}_{\mathrm{off-diag}}\)).
고전적 모사의 어려움
이에 더해 논문은 실험에서 측정한 2차 시간-역순 상관자를 고전적으로 모사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텐서 네트워크와 몬테카를로 방법을 결합한 새로운 고전 알고리즘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 알고리즘을 사용하더라도 부호 문제와 텐서 네트워크 수축(contraction)의 계산 비용 때문에, 실험에서 사용한 65큐빗 시스템을 모사하려면 Frontier 슈퍼컴퓨터의 자원을 모두 사용해도 수일 이상이 걸린다고 추정하였다.
이처럼 고전 모사의 난이도를 면밀하게 분석한 것은, 이전 IBM의 양자 회로 실험에서 다루어진 일부 관측량이 계산복잡도 측면에서 반드시 어려운 것은 아니며 실제로 Pauli propagation 등의 알고리즘으로 효율적으로 계산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이 실험을 고전적으로 모사한 결과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2차 시간-역순 상관자의 고전적 모사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논문이 Nature에 공개되었을 당시, 논문의 일부 저자들은 2차 시간-역순 상관자의 고전적 모사가 어렵다는 주장을 추가로 뒷받침하는 노트를 arXiv에 공개하였다 [King et al. arXiv:2510.19751].
논문의 한계
다만 본 연구에도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 본 연구에서 측정한 시간-역순 상관자는 물리적으로 관심 있는 해밀토니안 동역학이 아니라 랜덤 양자 회로의 동역학에 대해 얻어진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정보 전파 속도에 상한이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물리적으로 더 관심 있는 대상은 에너지가 보존되는 해밀토니안 동역학이다. 이러한 동역학은 일반적으로 Trotter-Suzuki 분해 등의 방법으로 양자 회로에서 구현할 수 있으나, 오류를 작게 유지하려면 깊은 양자 회로가 필요하다. 이는 현재의 잡음(noisy) 양자컴퓨터보다는 내결함성(fault-tolerant) 양자컴퓨터가 필요한 영역이다. 둘째, 본 연구에서 주장하는 양자 이득은 랜덤 회로 샘플링이나 보손 샘플링(boson sampling)과 달리, 고전적 모사의 어려움이 계산복잡도 이론에 의해 보장된 결과는 아니다. 대신 저자들이 제안한 고전 알고리즘의 계산 비용을 바탕으로 고전적 모사의 난이도를 추정하였다. 물론 이 알고리즘은 현재 알려진 방법 가운데 상당히 효율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이보다 더 효율적인 고전 알고리즘이 발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양자 이득을 주장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엄밀한 계산복잡도 이론에 기반한 양자 우위의 증명이라기보다는, 대규모 양자 프로세서에서 기존의 고전적 방법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양자 다체 동역학적 관측량을 측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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