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연구실

광자 하나에서 양자 네트워크까지, 빛으로 양자의 미래를 잇다

UNIST QUPID 연구실(김제형 교수)

  • 탐방연구실 UNIST QUPID 연구실(김제형 교수)
  • 글 작성 QISCA 학생기자단 표재영(광운대학교), 김도겸(한양대학교), 전재민(고려대학교), 이성빈(서울대학교), 백원준(연세대학교)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 울산역을 출발한 택시는 푸른 산자락 사이를 달려 UNIST에 도착했습니다. 도심에서 떨어진 캠퍼스는 자연 속에서 연구에 몰두하기 좋은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번에 학생기자단이 찾은 곳은 자연에서 가장 익숙하지만, 양자세계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질문을 품고 있는 '빛'을 연구하는 QUPID연구실입니다.

김제형 UNIST 교수는 학생기자단을 반갑게 맞이하며 자신이 빛에 매료된 이유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빛은 우주적 규모를 다루는 상대성이론과 원자 규모를 다루는 양자역학을 모두 관통합니다. 상대성이론에서는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 속도의 한계를 정하고, 양자물리학에서는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양자중첩과 얽힘을 검증하는 대표적인 실험 대상입니다. 처음에는 레이저를 연구하고 싶었던 김제형 교수는 대학원에서 광자 한 개를 생성하고 제어하며 측정하는 양자광학을 접했습니다. 김제형 교수는 레이저보다 더 근본적인 빛의 단위인 광자 하나를 다루는 일에 매료돼 지금까지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팅, 양자센싱, 양자이미징은 양자관원의 대표적인 활용 분야로 꼽힙니다. 하지만 김제형 교수는 양자광원이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일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고 여려 차례 강조했습니다. 레이저도 처음 개발됐을 때부터 광통신이나 의료기기, 산업용 가공 장비에 쓰일 것이라고 예상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레이저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뒤 수십 년에 걸쳐 새로운 활용처가 등장했습니다. 김제형 교수는 양자광원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양자광원을 소형화하고 칩에 집적하며, 하나의 장치나 모듈로 만드는 작업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QUPID 연구실의 목표는 미래의 활용처를 미리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활용이 탄생할 수 있도록 양자광원을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광자의 역설

광자는 주변 환경과 잘 상호작용하지 않습니다. 양자정보를 전달하는 입장에서는 큰 장점입니다. 이동하는 동안 정보가 환경으로 쉽게 새어나가지 않아 양자상태를 비교적 잘 보존할 수 있고, 먼 거리까지 빠르게 정보를 운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광자를 이용한 많은 양자광학 실험을 상온에서 수행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하지만 계산을 수행하려는 순간, 이 장점은 문제점으로 바뀝니다. 양자연산을 수행하려면 두 큐비트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광자 두 개는 마주쳐도 대부분 아무 일 없이 지나갑니다. 대신 광자의 간섭과 측정을 이용해 연산을 구현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방식은 연산이 매번 성공한다고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광자가 많아질수록 여러 단계가 모두 성공할 확률도 빠르게 낮아집니다. 결국 광자는 외부와 잘 섞이지 않기 때문에 양자정보를 운반하기 좋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광자 간 직접적인 상호작용 기반의 연산이 어렵습니다. 이 역설은 광자 기반 양자정보처리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입니다.

QUPID 연구실은 광자 생성과 광자 사이에 필요한 상호작용을 만들기 위해 '양자 방출체'를 이용합니다. 양자 방출체는 에너지를 흡수했다가 광자를 방출하는 아주 작은 물리계입니다. 에너지를 연속적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계단처럼 구분된 에너지 준위를 갖기 때문에 종종 '인공 원자'에 비유됩니다. 특정 조건을 정밀하게 제어하면 광자를 한 번에 하나씩 방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고체 양자 방출체로는 양자점과 컬러센터가 있습니다. 양자점은 전자와 정공을 나노미터 크기의 공간에 가둔 반도체 구조로, 원자처럼 불연속적인 에너지 준위를 갖습니다. 컬러센터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결정에서 원자가 빠지거나 다른 원자가 들어가 새긴 국소적인 점결함입니다.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고 방출할 수 있어 단일광자원이나 스핀 큐비트로 연구됩니다. 특히 양자방출체의 스핀 상태를 제어하면 방출되는 광자의 편광과 얽힘상태 구현이 가능하여 스핀 양자상태와 광자 양자상태 간 상호 작용이 가능해집니다. 아래 실험 장비 사진은 고자기장 환경에서 양자구조체의 스핀을 제어하고, 단일광자 측정을 수행하는 실험 시스템을 보여줍니다.

고체 양자방출체의 스핀과 광자 상호작용을 구현하는 고자기장, 극저온 양자광학 시스템 사진

단일 양자방출체에서 스핀-광자 상호작용 구현 뿐만 아니라 원거리에 떨어져있는 두 개의 양자방출체간 상호작용도 가능합니다. 이는 각 방출체에서 나온 광자 간 양자간섭 구현을 통해서 가능해집니다. 최근 QUPID 연구실은 원자 기반 양자광원을 연구하는 부산대 문한섭 교수 연구팀과 함께 인공원자(InAs 양자점)-Cs 원자에서 나온 광자들이 양자간섭을 일으킬 수 있는지 검증했습니다. 서로 다른 시스템에서 나온 광자를 간섭시키려면 파장과 편광, 선폭, 시간적 파형 등의 특성이 거의 같아야 하는데 양 연구진은 고효율 단광자 생성과 파장 제어 기술을 통해 서로 다른 물리계에서 나온 광자 사이의 양자간섭을 성공적으로 구현했습니다. 양자점은 광자를 잘 방출하는 양자 방출체이고, 원자 앙상블은 양자정보를 잘 저장할 수 있는 양자 방출체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서로 다른 이점을 갖는 이종의 큐비트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양자시스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부산대 연구진의 세슘 원자 앙상블 광원과 UNIST 연구진의 양자점 단일광자원을 이용한 양자간섭 실험 구성. 양자점은 원형 브래그 격자 형태의 나노광학 공진기와 결합돼 있습니다. 두 광자는 빔분할기에서 만나 홍·오우·만델 간섭을 일으킵니다. 출처: K.-Y. Kim et al., Light Sci.Appl. 15, 320 (2026), Fig. 1, CC BY 4.0.

양자점 광자와 세슘 원자 앙상블에서 발생한 광자 사이의 이광자 간섭 측정 결과. 두 광자의 방출 파장이 상이한 경우(왼쪽)는 편광에 따른 홍·오우·만델 간섭 패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반면, 두 광자의 방출 파장이 일치하는 경우(오른쪽) 편광에 따라 간섭패턴에 차이가 발생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K.-Y. Kim et al. Light Sci.Appl. 15, 320 (2026), Fig. 4, CC BY 4.0.

양자컴퓨터의 미래, 더 크게보다 다르게

김제형 교수는 양자컴퓨터의 발전 가능성을 낙관하면서도, 현재의 기술을 단순히 확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한지는 신중하게 바라봤습니다. 최근 구글과 IBM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의 대규모 투자로 큐비트 수와 장비 성능이 빠르게 향상됐고, 양자화학을 비롯한 응용 연구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을 그대로 확장해 수천, 수만 개의 큐비트를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을지, 큐비트 수의 증가가 곧바로 유용한 양자컴퓨터로 이어질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전망했습니다. 김제형 교수는 이를 진공관과 트랜지스터의 역사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진공관 컴퓨터의 성능을 개선하던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반도체 트랜지스터는 초기에는 작은 돌맹이에 철사를 붙힌 것 같은 진광관 트랜지스터에 비해 매우 어설픈 형태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컴퓨터의 구조와 크기, 활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습니다. 마찬가지로 양자컴퓨터도 현재 큐비트 플랫폼을 정교하게 개선하는 것을 넘어, 기술의 방향 자체를 바꿀 새로운 물리계나 연산 방식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양자컴퓨터가 고전컴퓨터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레이저와 같이 새로운 형태의 광원이 등장했다고 모든 가로등과 실내조명이 레이저로 바뀌기 보다, 레이저만이 수행할 수 있는 통신과 의료, 정밀가공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양자컴퓨터의 미래 역시 고전컴퓨터가 이미 잘하는 일을 대신하기보다, 양자컴퓨터만이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는 데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실험 연구자가 되는 방법

새로운 양자광원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양자컴퓨터의 '게임 체인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연구자가 필요할까요? 이에 대해 김제형 교수는 특정 과목이나 기술보다 먼저, 주변의 모든 현상을 관찰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10m가량 떨어진 두 지점의 높이를 맞추던 작업자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작업자는 값비싼 레이저 수평계 대신 물을 채운 긴 호스를 이용해, 연결된 물의 높이가 같아지는 단순한 물리 원리를 활용했습니다. 김제형 교수는 "실험 아이디어가 반드시 논문이나 전공 수업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일수록 기초과학이 중요한 이유

김제형 교수는 "인공지능과 첨단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많은 학생이 전공과 미래에 대해 불안하게 바라본다"며 "한 분야의 전문성만으로 충분한지 의문이 들고, 수십년 또는 수백 년 전에 정립된 물리학 이론을 배우는 일이 시대에 뒤처진 선택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제형 교수는 "기술이 빠르게 변할수록 오랫동안 유효한 기초지식의 가치가 더욱 커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최신 기술의 세부 지식은 불과 몇 년 만에 낡을 수 있지만, 고전역학과 전자기학, 양자역학, 열통계역학을 비롯한 물리학의 기본 원리는 여전히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토대"라고 말했습니다. 수학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 역시 기술이 바뀌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김제형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분야라면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말라"라고 조언했습니다. 기초과학은 어렵지만 오랫동안 지속되는 가치와 깊이 있는 재미를 지닌 분야라는 것입니다.

연구의 실패를 견디는 내면의 단단함

인터뷰 말미, 김제형 교수는 연구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원 생활에는 무엇을 해도 풀리지 않는 시기가 찾아올 수 있으며, 이를 견디려면 자기 안의 단단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힘은 거창한 성공에서만 생기지 않습니다. 김제형 교수는 "과거 대학생 시절 매일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무전여행에 나서는 등 크고 작은 도전을 경험하며, 새로운 도전을 통과해가며 쌓은 '나도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연구가 막힌 순간에도 다시 나아가게 하는 자기 신뢰가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광자 하나를 제어하는 정밀한 기술 뒤에는 결국 답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연구자의 단단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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